[대리운전 기사들의 애환] "보험 수수료 다 떼면 1건당 5천원 벌이"
<1> 대리운전기사 이영학 씨의 하룻밤
<2>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리운전기사들
<3>어둠 속의 직업 양성화해야(대리운전업법 제정과제)
대리운전 기사들은 어둠이 내리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대리운전을 하는데 계절을 가릴 수는 없지만 칼바람이 살을 에는 겨울 날씨는 더욱 힘들다. '콜'을 기다리는 시간에 마땅히 추위를 피할 장소도 없다. 이보다 더 힘든 것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콜과 괜한 시비를 거는 취객과의 마찰, 법적 보호장치 미흡 등. 노조를 결성, 요즘 자신들이 소속된 대리운전업체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일 열고 있는 이들의 애환과 개선점을 3회에 걸쳐 싣는다.
27일 오후 8시 대구 달서구 두류역 15번 출구. 두터운 잠바와 목도리, 마스크를 한 대리운전기사 십여 명이 손에 든 스마트폰을 연신 쳐다보며‘콜’을 기다렸다. 대리운전 13년 차 최원철(51) 씨는 기사들의 집결지가 여러 곳 있다고 했다.“황금네거리, 북구 유통단지, 동대구역 그리고 이곳 두류역 등입니다. 인근이 유흥가라 콜이 많거든요.“ 김기동(31) 씨는 올겨울 추위가 심해 예년보다 일이 힘들다고 했다. “새벽엔 마땅히 있을 곳이 없어 불 꺼진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도둑 취급을 받기도 해요. 콜을 놓칠까 봐 전파 수신이 약한 지하철역엔 못 들어가요.”
◆반가운 첫 손님
“띵동~.”오후 9시쯤 대리운전기사 이영학(48) 씨의 스마트폰에 콜이 울렸다. 동료의 부러운 시선이 쏠렸다. “오늘도 몸조심합시다.” 동료와 인사를 나눈 이 씨는 발길을 서둘렀다. 그가 도착한 곳은 부근 유흥가. 20대 남성 3명이 서 있었다. 술에 별로 취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 씨는 안심했다. 실랑이를 벌이거나 요금을 떼일 일이 적어서다. 동구 신천동 한 식당까지 손님을 데려다 준 이 씨는 1만원 지폐 한 장을 건네받았다. “대리운전업체에 주는 수수료 3천원과 보험료, 콜 프로그램 사용료 등을 제하면 제 몫은 5천500원에 불과합니다. 금`토요일엔 하루 10시간 동안 6, 7건 콜을 받지만 평일엔 3, 4건도 겨우 할 때가 많아요.”
◆뛰고 또 뛰고
오후 10시가 넘자 이 씨가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횟수가 잦아졌다.“오후 10~12시 사이에 콜이 몰립니다. 그만큼 기사들이 신경을 집중해요. 남들보다 먼저 손님을 잡아야 하거든요.” 대구대리운전기사노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대구지역 대리운전기사는 5천 명가량. 파트 타임으로 시작했다가 직업이 되는 경우가 적잖다. 그만큼 경쟁도 심하다. “가령 한 식당에서 대리운전기사 여러 명을 부르면 가장 일찍 도착한 기사가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는 손님을 맡는 게 일종의 규칙이에요.” 기사들이 콜 현장에 먼저 가려는 이유다.
지나친 경쟁이 사고도 부른다. 이 씨도 지난해 빗길에 뛰다 미끄러져 다리에 깁스를 하고 50여 일을 쉬었다. 요즘은 매일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출근한다. 완치가 안 됐지만 더는 쉴 수 없어서다.
대리운전기사들이 뛸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콜을 받고 10분 안에 손님이 있는 위치에 가지 않으면 대리운전업체에 벌금 3천원을 내야 한다. “손님이 술에 취해 위치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늦을 때가 잦아요. 이 때문에 무조건 무단횡단을 합니다. 그러다 차에 치여 죽은 기사도 봤어요."
◆먼 곳 손님은 곤혹
오후 11시쯤 동대구역 인근. 가로등만이 불을 밝힌 인적 끊긴 거리 위에 이 씨가 칼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입구를 걸어 잠가 피할 곳도 없다. 편의점에 들어가도 되지만 대신 몇백원짜리 음료 하나라도 사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 다시 콜이 울렸다. 달서구 월성동 한 아파트 단지로 가는 손님이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늦은 밤 아파트 단지가 많은 달서구 상인동과 월성동, 북구 강북지역, 수성구 시지 등 도심 외곽으로 가는 손님이 많아요. 손님은 반갑지만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도심 외곽에서 시내로 나오는 손님이 없는 탓에 자비를 들여 시내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스가 끊긴 늦은 밤에 비싼 택시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대리운전업체는 대리운전기사들에게 회비를 받아 속칭‘커버차’를 운영한다. 도심 외곽에서 시내로 기사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다. 하지만 기사들은 사용료를 내고도 이용하기 어렵다. “25인승 커버차에 수십 명이 타고 있어 못 타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뛰어서 시내에 오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3, 4건의 콜을 받을 수 있는 시간에 1건밖에 못해요.”
◆동틀 무렵 집으로
이 씨의 일은 28일 오전 5시가 돼서야 끝났다. 그는 “오늘은 ‘매너 좋은’ 손님만 만나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욕설은 물론 폭행까지 하는 손님을 심심찮게 만나기 때문이다. "대리운전기사의 10% 가량인 여성들의 피해는 더 심각합니다. 손님이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 성희롱 피해가 커요."
퇴근길에 이 씨는 집이 아닌 인근 국밥집으로 향했다. “일하는 도중엔 시간이 아까워 밥도 못 먹어요. 퇴근하자마자 허기를 채우러 국밥집으로 갑니다. 가족 모두 자는데 집에 가서 밥 차려 달라는 것이 미안해서요.”
국밥집에는 퇴근한 동료가 여럿 모인다. 이들은 국밥에 소주잔을 기울이다 동틀 무렵 흩어진다.
더는 콜이 울리지 않는 이 씨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유치원생 아들 사진이 있었다. “콜을 기다리며 하루 수백 번 스마트폰을 쳐다봅니다. 그때마다 집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을 아들 사진을 보며 고단함을 덜어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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