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바라는 부질없는 허송세월을 4~5년 보내다 보니 뭐라 할말이 없네
너희들이 말하는 모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내겐 그것보다도 어머님이 더 중요하여 너히들의 모임에 등한시 했으니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겠나.
너히들 이 카페의 모임은 이 카페에서 회칙데로 임하는것이 정한이치고 회칙데로 따르는것이 회원 임무 일것이니까?
회칙의 중요성을 알지만 너네들은 회칙데로 잘 행해왔는지...
지금도 회칙데로 잘 행할것인지...
동창회 모임이라면 이글을 적지도 않겠지만 월친회라는 글을보고 고향꼬치친구들께 하는 쓴 소리니 앞으로 약이 되었으면 한다.
부모님들이 만들어준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들이라 영원히 떨어질수도 없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친구들간 그냥친구가아닌
부모님들이 맺어준 친구의 연을 다하고 살아가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회비모아서 야유회한번가고, 모여앉아 술한잔 나눌수있는 친구와 모임은 이 월친회 보다도 다들의 주변에 더 많이있겠지?
이걸 월친회의 임무고 회원유지의 자격요건이라면 너희들이 제명하기전에 내가 먼저 탈퇴했겠지.
친구가 힘들어하면 위로하고, 친구의 부모님이 병져누우시면 지나가는길에 한번 들러보고, 우린 다들의 부모자식이쟌아,
그냥만난 친구들이 아니기에...
고향내려가면 이웃 부모들께 들러 인사하고, 잘 계시는지 안부묻고,
이것이 월친회의 깊은 뜻이겠지?
14회 동창회인지 월친회인지 참석을 하지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동창생들은 좀이해 해주고, 예전 월친 회원들은 좀 더한생각으로 발전이 있었음한다.
저는 월친회 회원으로 아버님상을 치렇고, 그때 회원으로서 임무를 다했는지 한번생각해보고 앞으론 친구지간에 이런일이 없었음 한다. 억수같은 비속에서 동생 월용회회원들이 상여메고 초상처줌에 지금도 동생 친구들께 고개숙이고 보답하여야 함에도 다 못하고 있는데 어머님 초상에도 이 동생들이 밤세워가며 초상 처 주더구나, 언제 이빛 다갚을지...
창규 한데 예기듣고 알았는데 제명됬다고 하기에 내 임무와 역활을 못했기에 제명됨을 변병하지는 않을께
그러나 나와같은 또다른 친구가 없어야 겠기에 이글을 적으니 친구들간에 좋은 우정으로 변했음한다.
몆년전 선영이만나서 이야기좀 나눴고, 회비이야기하다 내형편이 그러니 온라인하다하니 다음참석할적 주는게 낮다고 하였고,
그후 임원이 바뀌고 총무가 바뀌어 회비가 얼마 밀려으니 회비전화나 안부전화 한 통화 한놈있나 이 친구들아!
그래 회원 제명했다고 부모대의 초상에 들러 얼굴한번 내미는게 월친회고 꼬치친구가,
너네들이 기장하고 우리집이 그렇게 머나, 술한잔 먹을수있는 시간은 있어도 병든부모님 한번 둘러보는 시간은 아깝겠지
모임으로 기장모였으면 40분거리인데 한놈이라도 들러서 어머님 얼굴이라도 한번 뵈올수있는 아량은 있어야지
못난놈들... 길가다 만난 친구보다도 못한놈들이다. 50이 넘도록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 자신부터도 못하고 있으면서 이런 소릴 하고있으니...
난 이제 양가부모를 다 여의였으니 나머지 친구들과 부모님께는 이러지 말자는 쓴 소리니,
먼저 자식도리부터 잘하고 친구로서 친구의 부모들께 조금이나마 신경을 써으면하는 바램이니 널리 이해하고 좋은 월친회
발전되는 월친회가 되었음 한다.
참고로 내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기고하니 다들 살아계실적에 잘하자!
시간의 무상함에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어머님이 뇌경색으로 정신을 잃어 깨어나길 조마조마하게 만감을 교차하며 중환자실을 지키던게 어그제 같은데, 어려운고비 힘든고비를 자식에게 짐않되겠다고 수없이 되내이 던 어머님이 제 곁을 떠난지도 열흘이 지나갑니다.
언제까지 계실줄만 알았고 언제든지 나의 버팀목으로 계실실줄 알아던 부모님...
아버님을 떠나보낸지 12년...
어머님마저 떠나니 이젠 정말 혼자가 된 것 같습니다.
영원하리라던 부모님 그늘이 막을 내린 지금 잃은 것은 뭐고 얻은 것은 뭘까요?
주변의 모든 분들이 찾아와 그간 고생했다고 인사를 전하지만 이것으로 어머님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부모님이란 존재의 분신으로 이 세상에 와서 부모님의 사랑과 덕으로 성장을 하고서도 본인 서스로가 노력하고 고생하여 자란 듯 부모의 뜻을 거절하고 자기 잘난맛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 어머님의 생각은 뒤로 미루고 내 잘난맞에 내가족과 내자신을 우선으로 살아온 세월이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지금엔 후회해도 소용없는 메아리 일 뿐... 다들 있을적엔 모르다가 없으면 후회하고 아쉬운가 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긴 고난의 여정에도 자식걱정을 우선으로 삼아오신 어머님...
자식을 위한 훈장으로 얻어신 병환...
비로소 훈장을 안고서야 나와 함께한 5년, 왜 건강하실적엔 함께해주지 못해나 하고 후회를 하지만 내 곁엔 계시지 않는 어머님... 이게 우리들의 자화상일까요?
어머님 손발이되어 보낸 3년의 세월에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다보니 우선 자본을 잃게 되었고, 연인과의 사랑을 잃게 되었고, 친구들의 우정을 잃었고, 사회생활이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겐 어머님과 함께 보낸 꿈같은 3년의 세월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 소중함만큼이나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함께할 수 없는 공허함...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러지만 난 아직도 그 시간에 익숙되어 있습니다.
8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정비소 가게 문 열어놓고, 어머님 이불을 덜추고 귀저기 갈고 다리, 팔, 허리를 주물러 잠을 깨우는데 30분이면 되던 시간이 1시간으로 늘었고, 비록 거실에서 하는 운동이지만 아침 준비하는 동안 어머님은 운동하시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만들기 위해 대리운전 마치고 홈플러스들러고 차에서 새우잠자면서 새벽시장 개장시간 기다려 시장봐다 조리해드리면 맞있어 하던 그 모습과, 어릴적 생선가시를 밝아내고 맛있는 것을 내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 였지만, 이젠 내가 어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었던 그 고마움, 그렇게 아침차려서 같이 먹고 나면 약먹기 위해 30분기다리는 시간 설거지하고 약 챙겨드리고, 힘들어하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1층으로 내려온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머님 손잡고 정비소마당을 거닐다보면 11시가 넘어간다. 어머님 안아서 2층으로 올라가 어머님 눕혀드리면 어린아이마냥 새근새근 5분도 안되어 곤하게 잠에 빠져든다.
잠드신 어머님 모습을 떠올리며 어머님 점심준비가 분주하다. 가게손님 오면 가게로 뛰어내려왔다가 2층으로 뛰어갔다가 12시반이면 어머님을 깨운다. 어머님 잠을 깨우는 데는 몸이 굳어지기 때문에 아침의 반복으로 최소30분이 걸리고 1시에 점심을 시작하여 약을 드시고 나면 14시가 된다.
어머님은 창틀을 잡고 창밖 세상구경에 여념이 없다. 가게 내려간다고 인사드리면 고개만 끄덕인다.
두루룩 계단을 달려 내려와 미뤄듯던 자동차정비일이 바쁘다. 2층에서 무슨 소리가 나나하고 귀를 쫑끗이 세우고 일하다보면 2층을 달려 올라가는 일이 부지기수, 나를 믿고 맡겨주시고 이 생활을 이해해주시는 고객님들이 고마울 뿐이다.
정비일에 빠져다, 급하게 달려 올라간다. 16시면 어머님운동시간인데 놓치기가 부지기수다. 어머님 모시고 내려와 정비소마당 한편에 마련한 평상에 앉혀두고 정비일하면 어머님은 힘들게 지팡이에 의존하여 걸음을 옳기기 시작한다. 넘어 질까봐 모든 신경은 어머님께 쏠리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손에는 기름이 묻어있다.
18시면 어머님을 모시고 올라간다. 이 두 시간이 힘드신지 어머님은 몇 번이고 평상위에서 주무시고 그를 때면 손을 씻고 베개를 베이고 이불을 덮어 드린다. 마음한쪽은 아프지만 어머님은 그래도 나와함께 있어 좋아하시며 웃음으로 보답한다.
어머님 거실에 앉혀두시고 빨래 걷어 어머님 앞에 놓으면 힘없는 손으로 빨래를 개빈다. 저녁상 차려서 드시라고 할 때까지 수건 두 장도 개비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를 돕는다고, 나에게 짐 않되겠다고 그렇게 하시는 어머님마음을 헤아리면 나의 눈가에 눈물이 맻히 지만 난 어머님께 반찬 떠 드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렇게 어머님과 저녁을 먹고 약 드시고 나면 19시다.
엄마 가게 문닫고 올게! 하면 “응”하고 대답하신다. 쫒아 내려와 가게 문 닫고 사무실정리하고 올라가면 19시30분이다.
엄마 똥주머니(장루)비우고 귀저기갈자고 하면 엉덩이를 밀고서 목욕탕 앞으로 오신다.
따뜻한 욕조에 안아서 넣어주시면 빙그레 웃음으로 답한다. 엄마 시원하고 좋나 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신다. 엄마 고개 말고 입으로 대답해야지 라고 물으시면 힘없는 목소리로 “응 좋다“로만 답하신다.
깨끗하게 씻기고 닦여서 장루용품 갈고, 귀저기 갈고 옷 갈아입히고 나면 21시가 가까워진다.
어머님 안아서 뉘이고 머리맡에 앉아서 어머님 얼굴 만지작거리고 놀면 어머님은 어느새 21시도 안되어 잠이 들었다.
난 그때서야 어머님 머리맡에서 노트북을 켜고 카페를 열어 대리운전 세상구경을 한다.
우리 공주가 하교해오면 어머님을 우리공주에게 맏기고 대리운전을 가야하니 딸을 기다리는 마음 급한 시간이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21~22시 사이면 대리운전 시장으로 나선다. 곤하게 주무시는 어머님얼굴을 다시한번보고 은주야 아빠가니 할머니방 자주들러바라! 예! 다녀오세요!
대리운전 시장은 내겐 희망의 시간이다.
우선 어머님과 떨어져 잠시 잊을 수 있고 세상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의 통로로 다들 열심히 사는 모습에 용기를 갖게 된다. 어머님을 모시기 전 까지는 3~4시까지 일했으나 어머님과 함께하면서 2시 이전에 마치고 2시30분까지는 집으로 돌아온다.
급한 마음에 어머님 방문을 먼저 열어 주무시는 모습에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귀저기 부터 간다. 모기같은 소리로 “왔나“ 한다. 유일하게 어머님이 말을 먼저하시는게 이때다. 응 엄마! 엄마 아프지는 않나. 고개를 흔들어 아프지 않다고 대답하신다. 그래 엄마 자라! 나도 엄마 옆에 잘게! 2분도 안 되서 잠이 드신다.
이제야 일하고온 옷을 벗고 무슨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잠옷대신 츄리닝을 입고 어머님 곁에서 잠을 청한다. 잠옷을 언제 입었는지가 가마득하다. 2시간 후면 돌려 눕혀야 하니까? 4시, 6시면 일어나 어머님을 돌려 눕히고 힘들어하는 아들을 깨운다. 중3인데 학교를 별미로 빨리 깨운다. 내가 잠을 자기위해서... 아침만 챙겨주고 내 방에 들어가 잠들면 아들이 등교 전 할머니를 돌려 눕히고 등교를 한다.
못난 아빠를 만나 고생한 우리 딸과 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자식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 같다.
눈 감았다 싶은데 8시 알람이 울린다. 두 개의 알람을 맞혀 났음에도 놓칠 때가 많다.
이렇게 보낸 3년의 세월이 꿈만 같이 흘러갔는데 어머님은 계시지 않고 아쉬움만 가득하다.
누구나 다 왔으면 언젠가는 가야할길이고 그 수순을 밟아 가셔을 뿐인데 내게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 너무도 큰 공허함으로 남는다.
아무것도 가져가시지도 못하면서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다 가신 어머님...
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밥알을 넘길힘이 없어 죽을 드시는 그 순간까지도 자식을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님... 나의 그 고귀하고 소중하신 어머님은... 나의 다리를 베개삼아 누워서 내가 만져주는 얼굴의 촉감을 좋아라고 빙그레 웃으시고 한마디 말씀도 없이 먼 길을 가셨다.
내가 다 사랑해주지 못한 어머님 이제 자식, 손주 걱정 잊어 시고 아버님 곁에서 편히 쉬시면서 내가 해주지 못한 좋은 세상 구경하시면서 즐겁게 잘 보내세요...
저의 다리위엔 어머님이 영원히 누워계시니, 이 어머님의 여운이 헛되지 않게 어머님의 바램인 자식과 손주 걱정을 이젠 내가 다 할게요.
어머님!
엄마 안녕...
'행복남의일상 > 나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토마토 손지연기자의 기고 글 바로잡기 (0) | 2012.01.14 |
---|---|
새해 福많이 받으세요... (0) | 2011.12.31 |
행복한 마음을 여는 글 (0) | 2011.12.03 |
가입인사 올리며, 초대합니다. (0) | 2011.12.02 |
삶의여유 (0) | 2011.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