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장은 지난해 초 은퇴를 하고 호프집을 시작했다. 뉴타운 개발로 2만명 가까운 배후 수요가 있다는 말에 보증금 1억원·월세 290만원에 15평 규모 점포를 빌려 장사를 시작했다. 인테리어 비용만 7000만원 넘게 들었고, 작년에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하루 매출이 75만원을 넘는 등 장사가 생각보다 더 잘돼서 신났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단지 내에 프렌차이즈 치킨집이 생겨나고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A사장은 “하루에 임대료 10만원, 주방 아줌마 5만원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며 “점포를 부동산에 내놓은 지 6개월째인데 나가지도 않고 하루하루 죽겠다”고 말하면서 문만 열어두고 불을 끈 채 벽걸이 TV로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인데 장사 준비 안 하느냐고 묻자 A사장은 눈을 흘기며 “어차피 준비해도 사람 몇명 안 오는데 준비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 불황에 점포 매물 급증…위기의 자영업자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실물 경기까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들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장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불경기에 점포가 나가지 않아 고통은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상가 정보 업체 ‘점포라인’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24개 업종에 대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 6월들어 매물로 나온 점포수는 총 976개로 올 2월보다 15.3%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한식점이 1월 74건에서 6월 183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의류점도 1월 4개에서 23개로 늘어났다. 커피전문점은 올 2월 28개에서 6월 67개로 증가했고 PC방은 올해 초 163개에서 215개로 증가했다. 영업중이 아닌 1층 공실 점포 숫자도 1월 14개에서 올 6월 48개를 기록 중이다.
길음동 K부동산 관계자는 “권리금도 기존에 6000만~8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던 매물이 요즘에는 2000만~3000만원도 못받는다”며 “장사가 안된다고 내놓으면 권리금을 많이 못 받고 나가기 때문에 가게를 내놨다는 사실을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길음 뉴타운 초입의 아동복점 B사장도 최근 새마을금고에서 햇살론 1500만원을 생활비 용도로 대출받았다. 장사 4년차인 B사장은 7평 남짓한 공간에서 월세 100만원을 주고 혼자 장사하고 있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벌기 어렵다. B사장은 “휴가철이라 여름에 장사가 원래 잘 안되긴 하지만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며 “문제는 점포를 내놔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베이비 부머들 문의 많지만, 실제 거래는 거의 없어
서울시내 공인중개소들은 “요즘 창업때문에 상가 문의는 많은데 경기가 나빠 실제로 계약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인근 S중개소 벽에는 커피숍, 호프집, 사무실, 상가 등 각종 점포 매물이 나와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해당 중개소 관계자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매물 찾는 전화는 많이 온다”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동 인근 중개사들도 요즘 부쩍 상가 매물이 나왔다며 벽에 많이 붙여뒀다.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마포 용강동 상수동 인근에 매물이 많이 나온다”며 “워낙 장사가 잘 안 되다 보니 점포를 내놓으려는 사람들이 많고 은퇴 인구가 늘면서 상가 수요가 많아 매물을 붙여뒀다”고 말했다.
◆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 겹치기 업종은 피해야
상가 전문가들은 상가 분양가·임대료를 너무 높게 잡으면 지금과 같은 불황에 살아남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상가뉴스레이다 선종필 대표는 “불황기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임대료”라며 “주택 가격뿐만 아니라 상가 임대료도 재조정되는 시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또 “내 자리를 정하기보다 짓고 있는 건물 경쟁 업종 진출 잘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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