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좀 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
어릴적엔
강 건너 산비탈 마을
기차가 지나갈 때
손을 흔들었지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던 이가
바람에 모자를 놓쳤을 때
보기 좋았지
어른이 되어
기차를 타게 되면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고 싶었지
강 건너 앵두꽃 핀 마을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명주바람에 놓아주고 싶었지
모자를 열 개쯤 준비해
강마을의 아이가 손을 흔들 때
하나씩 바람에 날리는 거야
KTX는 시속 300Km로 달리지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미친듯 허겁지겁 사는 거 싫어
기차 안에 사람이 수백 명 타지
기차도 사람이야
더 느리게 달려야 해
시속 10Km면
초원의 꽃들과 인사 나눌 수 있지
시속 30Km면
강마을 아이들과 손을 흔들 수 있어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6박 7일에 달리는 거야
우리나라 강마을 아이들 모두 모여
하얗게 손을 흔들다
모자를 찾으러 강물 속 풍덩
뛰어들 수 있게
-곽재구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중에서-